
국내 제조 현장의 로봇 밀도가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으나, 핵심부품 국산화 및 산업 종합경쟁력은 주요국 대비 크게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과 인공지능(AI) 기반의 융합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 단순 설비 보급을 넘어 원천기술과 실증, 양산이 결합된 산업 생태계로의 전면적인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제조용 로봇 역대 최대 호황… 한국은 4위, 경쟁력은 6개국 중 꼴찌
산업연구원(KIET)이 최근 발표한 '글로벌 로봇산업의 경쟁 구도 재편과 한국의 대응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전 세계 제조용 로봇 신규 판매대수는 60만 3,307대로 전년 대비 11.3% 증가하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 가운데 한국의 제조용 로봇 신규 판매대수는 전 세계 4위를 기록했으며, 특히 제조업 종사자 1만 명당 로봇 보급 대수를 의미하는 '로봇 밀도'는 1,066대로 세계 1위를 차지해 압도적인 현장 활용 역량을 입증했다.

그러나 글로벌 제조용 로봇 시장이 거대 내수 시장을 확보한 중국(점유율 58.7%)을 비롯해 미국, 일본, 한국, 독일 등 상위 5개국(전체 판매의 80.2% 차지)을 중심으로 집중된 가운데, 한국의 질적 경쟁력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5년 산업연구원 전문가 조사 결과, 한국 제조용 로봇산업의 종합경쟁력은 72.9점에 그치며 비교 대상인 일본(95.5점), 독일(88.4점), 미국(80.6점), 스위스(79.5점), 중국(79.4점)에 이어 6개국 중 최하위에 머물렀다. 특히 2023년 중국에 역전을 허용한 이후 경쟁력 격차는 더욱 확대되는 추세다.

대기업 투자 활기 속 44%에 불과한 부품 국산화율은 '발목'
최근 기계 및 자동화 산업의 패러다임은 단순한 하드웨어 정밀성 경쟁에서 벗어나, 현장 환경을 스스로 인지·판단하는 지능형 '피지컬 AI(Physical AI)' 시대로 급변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2025년 소프트뱅크그룹이 53억 7,500만 달러에 ABB 로봇사업부를 인수하기로 결정하고, 엔비디아가 화낙(FANUC)과 디지털 트윈 및 AI 학습 부문에서 제휴를 맺는 등 기술과 자본의 결합이 가속화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의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 확대, 두산로보틱스의 미국 자동화 솔루션 기업 원엑시아(ONExia) 인수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사업 확장 투자가 잇따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로봇산업 생태계의 허리는 여전히 취약하다. 감속기, 서보모터, 센서 등 로봇 원가를 결정하는 핵심부품의 국산화율은 44% 수준에 정체되어 있다. 또한 2024년 기준 2,509개 로봇 사업체 중 97.9%가 중소기업이며, 매출 100억 원 이상 기업은 3.2%에 불과해 대규모 연구개발이나 글로벌 양산 체제 구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데이터 축적과 핵심 기술의 내재화가 생존 조건
현재 글로벌 로봇산업은 미·중 중심의 공급망 블록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기술·데이터·조달·판매 시스템이 양분되는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다. 한국 공작기계 및 제조 인프라는 세계 최상위권의 활용성을 자랑하지만, 이를 토대로 한 운용 데이터와 원천 기술을 자국 기업의 독자적 역량으로 내재화하지 못한다면 장기적인 경쟁 우위를 담보할 수 없다.
정부가 추진하는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의 피지컬 AI 육성 및 '3M 전략(M.AX, Master, Mass Production)'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실증 중심의 단기적 보급망 확대를 경계해야 한다.
기업 및 공정별 현장 데이터를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팩토리 체계를 고도화하고, 감속기 등 취약 부품과 산업 특화형 솔루션의 글로벌 밸류체인 진입을 연계하는 종합적인 육성책 마련이 시급하다.
박상수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 로봇산업의 경쟁력은 단순한 보급 대수 확대가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 활용 역량을 어떻게 국내 기술, 데이터, 제품, 기업의 경쟁력으로 치환하느냐에 달려 있다"면서 "궁극적으로 한국은 방대한 현장 실증과 부품 스케일업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로봇 활용 선도국'에서 나아가 기술·생산·수출 전반의 주도권을 쥐는 '글로벌 로봇산업 주도국'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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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기자[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