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반도체 패러다임이 미세화 중심의 전공정에서 첨단 패키징 등 후공정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등 전공정 장비의 절대 강자인 네덜란드가 최근 후공정과 차세대 광반도체(Photonics) 생태계까지 빠르게 장악해 나가고 있어, 국내 기계·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의 전략적 공급망 진입이 시급한 시점이다.
네덜란드 반도체 산업의 폭발적 성장과 '베토벤 프로젝트'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네덜란드 통계청(CBS) 조사 결과 네덜란드 반도체 관련 산업 총매출은 2019년 213억 유로에서 2025년 456억 유로로 6년 만에 2배 이상(연평균 14%) 급증했다. 반도체 섹터 종사자 수 역시 같은 기간 2만 3,000여 명에서 4만 3,000여 명 이상으로 확대되며 폭발적인 외형 확장을 이뤄냈다.

여기에 네덜란드 중앙정부는 핵심 기업의 해외 이탈 방지와 아인트호벤 브레인포트 클러스터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2030년까지 총 25억 1,000만 유로를 투입하는 '베토벤 프로젝트(Project Beethoven)'를 가동하며 국가적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특히 네덜란드는 ASML(노광)과 ASM(증착) 등 전공정 강점을 바탕으로, 하이브리드 본딩 시장을 주도하는 1위 기업인 Besi를 축으로 삼아 후공정 영역까지 초격차를 넓히고 있다.
전자를 넘어 '빛(Photon)'으로… 광반도체 인프라 선점
AI 서버와 초대형 데이터센터의 발열 및 데이터 병목 현상을 해결할 게임체인저로 광전 융합 패키징(CPO) 기반의 광반도체가 급부상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범용 대량 생산 경쟁을 피하고, 차세대 광원 필수 물질인 인듐인화물(InP) 기반 집적 포토닉스 원천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광반도체 통합 생태계인 '포톤델타(PhotonDelta)'에 약 11억 유로(약 1조 6,000억 원) 규모의 대형 투자를 단행했다. 또한, 2026년 3월 아인트호벤 하이테크 캠퍼스에 1억 5,000만 유로 규모의 세계 최초 상업용 6인치 InP 파일럿 라인(PIXEurope) 건설을 개시하여, 2027년 본격 가동을 통해 글로벌 광반도체 공정의 메카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K-기계·소부장 진입 전략… "초정밀 하위 모듈 및 아시아 거점 노려야"
네덜란드의 장비 생태계는 VDL ETG, NTS Group, Neways 등 핵심 1차 협력사(Tier 1)를 중심으로 한 폐쇄적 수평 분업 구조를 고수하고 있어, 신규 업체의 단기 직접 납품 장벽이 매우 높다.
이에 따라 국내 기계 및 정밀가공 소부장 기업들은 최종 완제품(OEM) 벤더 진입에만 매달리기보다, 핵심 Tier 1 협력사들의 2차, 3차 공급망으로 진입하는 우회 전략이 효과적이다. 대형 장비 베이스 프레임, 난삭재 다축 가공품, 초고진공(UHV) 호환 밸브 및 펌프, 클린룸 특수 씰링재(O-링) 등이 주요 타깃 품목으로 꼽힌다.
이와 병행하여 네덜란드 기업들이 구축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생산 거점과의 파트너십을 연계해 조달망 진입 채널을 다변화하는 것도 핵심 과제다.
한·네덜란드 기술 상보성 결합… "선행 R&D 파트너십 시급"
국내 기계·반도체 소부장 산업이 차세대 기술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는 글로벌 연구 거점으로 진화하는 네덜란드와의 '크로스 밸류체인(Cross-Value Chain)' 구축이 필수적이다.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대규모 파운드리 제조·정밀 조립 역량과 네덜란드의 광반도체 원천 설계 및 초정밀 메카트로닉스 기술이 결합하면 배타성 없는 완벽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
특히 글로벌 CPO 시장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해 국내 선도 기업의 유리기판(TGV) 실증 기술과 네덜란드 연구소(CITC, TNO)의 신뢰성 검증 인프라를 적극 결합하는 선행 R&D 파트너십 마련이 시급하다.
KOTRA 관계자는 "네덜란드는 단순한 양산 기지가 아닌 전공정과 첨단 후공정 장비, 정밀제조 및 광반도체 원천 기술이 집약된 유럽의 최고 R&D 허브로 인식해야 한다"며 "국내 기계·소부장 기업들은 단기 실리 중심의 우회 공급망 진입과 함께 광반도체 파일럿 라인 참여를 통한 중장기적 차원의 글로벌 기술 동맹을 조화롭게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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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기자[email protected]